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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 사상 임기를 못 채웠던 대통령은 다수 존재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유독 재임기간이 짧았던 인물은 두 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바로 윤보선 대통령과 최규하 대통령인데 그 중에서도 역대 최단기간 재임하며 1년도 못 채운 최규하 대통령의 업적과 관련 키워드인 계엄령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사실 최규하 대통령은 1979년 12월 6일부터 이듬해인 1980년 8월 16일까지 역임했기 때문에 뚜렷한 업적이 없다.

 

먼저 시대의 흐름대로 정리해 보자면 1979년 당시 중앙정보부장이었던 김재규의 총격으로 박정희 대통령이 사망한 후 국무총리 자격으로 국정을 이끌다 같은 해 12월에 대통령에 취임하게 된다.

 

대통령 피살 사건은 상당히 충격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도 사회 혼란을 최소화하고 헌정질서 유지에 기여하며 사회, 경제, 안보, 고용, 문화 등 다방면의 행정에 신경 쓰기보다 정치 및 사회적 혼란 안정을 우선시했다.

 

또한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에 공감하는 발언을 여러차례 하며 민주적 개혁 기대를 모았으나 아쉽게도 실제 개헌까지는 실행하지 못한 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왜? 바로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키며 정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실제로 신군부가 수도권을 장악하며 군사적 쿠데타를 일으켰던 날짜가 79년 12월 12일로 최규하가 대통령에 오른지 불과 6일 만에 쿠데타가 벌어졌다.

 

이 때문에 최규하는 남은 임기마저 국정을 살필 여유가 없었고 신군부와 힘 겨루기를 하다 결국 평화적 퇴진을 맞이하게 된다. 참고로 말이 평화적 퇴진이지 1980년 5월 17일 비상 계엄령 확대 조치 이후 사실상 대통령의 권한이 무력화되었기 때문에 자진 사임한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드는 궁금증 하나가 있다. 최규하의 임기가 1980년 8월 16일까지였기 때문에 80년 5월 17일의 비상계엄은 최규하가 조치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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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아니다. 1980년 5월 17일에 있었던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는 형식적으로는 최규하 대통령 명의로 내려졌지만 당시는 신구부의 쿠데타가 성공한 이후였으며 이미 실권을 잃은 상태였기 때문에 주체적 결정권은 없었던, 하나회 세력의 신군부가 주도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최규하 대통령의 결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최규하 대통령 업적 및 과실 결론

업적: 정치 및 사회적 혼란을 잠재우는 것에 힘 썼고 짧은 임기였지만 주요 우방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며 국제 사회의 불안을 최소화 하는데 주력했다.

 

과실: 지도자로서 결단력과 추지녉이 부족했으며 군부 세력 견제에 실패해 국정 주도권을 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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