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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정 사상 역사에 공만 있던 대통령도, 과만 있던 대통령도 없다.
그리고 우리가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를 논할 때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이 있는데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의 근현대사 경제 성장에 있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박정희 대통령의 이야기다.
국가재건 최고회의 시기
5.16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장악한 후 혼란스러웠던 정치, 경제 질서를 재편하고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계획 수립, 수출 중심의 경제 정책의 기초를 마련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의 공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군사 쿠데타 집권, 헌정 질서 파괴 및 정치인과 언론, 사회단체 탄압은 정치와 언론의 자유도를 위축시켰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비판받고 있다. 그 시절 군사 정권은 그랬다. 대통령 말 한 마디면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말이 있었으며 국정원이 전신이 되는 중앙정보부는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바꾸는 것 말고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풍문이 돌 정도였으니까.
민정 이양 이후 제3, 4 공화국 초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했으며 이는 나아가 한강의 기적 기반을 형성하게 된다. 또한 수출 지향적 산업화 정책으로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매년 8~10%라는 말도 안 되는 경제 성장률을 달성했고 이외에도 경부고속도로 건설, 포항제철 건립 추진, 조선/기계/화학/전자 등 다양한 현대 산업 육성과 중화학 공업의 기틀을 다지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1970년에는 여전히 회자되고 있는 새마을운동을 시작하며 조선 시대 풍습이 남아있던 지방 농촌의 근대화도 추진하며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경제 성장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 과정도 공만 있었던 건 아니다. 3선 개헌으로 재임기간은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나 장기집권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야당, 언론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져 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3, 4 공화국 시기가 대한민국 경제사의 변곡점이 아니었나 싶다. 그만큼 업적이 더 크다.
4 공화국 후반
천연자원 하나 없는 나라의 진정한 자원은 인재라며 의무교육을 정착함과 동시에 전문 교육을 강화시켜 인적자원을 개발했고 이 시기에도 중화학공업 집중 투자로 산업 구조는 고도화되었으며 고도성장 지속에 따라 외환 사정 개선과 무역 규모 확대를 이뤄냈다.
하지만 4공화국 후반 시기에는 유신헌법을 제정하며 사실상 독재체제를 확립했고 중앙정보부와 군인, 경찰을 동원한 공포 정치, 여기에서 비롯된 부마항쟁 등 정치적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경제로는 100점, 정치로는 0점이었단 평가를 받는 시기이기도 하다.
1979년 10월
1963년 12월 17일부터 시작된 약 16년의 재임기간은 1979년 10월 26일, 중정부장이었던 김재규에 의해 피살되며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장 기간 재임했던 박정희 대통령의 시대도 막이 내렸다.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후대의 평가는 극명하게 나뉜다. 최빈국이었던 대한민국을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경제 강국의 기틀을 다졌기 때문에 경제 발전의 아버지라는 평가도 있는 반면 반대 세력들을 모조리 숙청하며 사실상 독재 체제로 나아갔기 때문에 민주주의의 억압자라는 양면적인 타이틀이 공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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