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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관련한 시사 프로그램을 살펴보다 한 패널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봤다. 현대사에 존재하는 대부분 대통령에게는 공이 있는 것처럼 과도 있다고.
즉, 공과가 함께 공존하기 때문에 잘하고 못하는 건 오롯이 개인의 정치색에 따른 판단일 뿐, 역사적 사실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고.
난 이 얘기에 공감했고 정치색을 내려놓은 채 대한민국 역대 대통령의 업적을 적어보는 것도 재밌겠다 싶어 오늘은 대한민국의 초대 수장인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에 공과 과의 시점으로 정리해볼까 한다.
건국 준비
이승만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주도했던 핵심적인 인사였으며 제헌 헌법 제정 및 민주공화제를 도입하며 공산당과 반대되는 사상인 자유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선 인물이다. 또한 UN으로부터 한반도 유일의 합법 정부를 승인받았기 때문에 차후 발생할 6.25 전쟁의 UN군 참전의 초석을 만든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이 과정에서 긍정적인 평가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란 늘 그렇듯이 부정적 시선도 공존하기 때문에 김정일 VS 이승만으로 양분되는 상황에서 남북 분단 고착화에 책임이 있다는 시각이 존재하며 단독정부 수립 과정에서 발생한 사회 갈등 심화, 권위주의적 통치를 지적하는 사람도 있다.
6.25 전쟁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발생한 6.25 전쟁에서 이승만 대통령의 공은 명확하다. 바로 국제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고 미국과 UN군의 지원을 확보한 점, 나아가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한 점.
물론 인민군 남하를 저지하기 위해 한강 인도교를 폭파한 것은 결과적으로 대규모 피란민의 피해로 이어졌고 반공 포로 석방에 국제 사회의 일부 비난도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미군과 UN군 참전을 주도한 핵심 인사였기 때문에 공이 조금 더 많았지 않나 싶다.
경제 및 사회 정책
대표적인 업적으로는 문맹퇴치 운동, 초등 의무교육, 철도와 항만, 도로 등 인프라 복구에 앞장선 것들이지만 아쉽게도 산업화 전략의 부재로 경제 성장률은 저조했고 여전히 농업 중심의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비판이 많다.
외교 정책
친미 반공 노선 확립으로 냉전 체제 속 안보를 확보했으며 대한, 필리핀 등 아시아 반공 국가와 협력하여 빠른 외교 회복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대일 강경 정책으로 한일 수교가 지연됐고 소련과 중국과의 외교 단절로 국제 외교는 아쉬웠다는 점도 존재한다. 하지만 당시 시대상은 공산, 민주의 냉전 체제가 극에 달했던 시기였기 때문에 외교 범위가 좁을 수밖에 없었던 건 어쩔 수 없었을 듯하다.
정치 운영
일제강점기를 거쳐 광복, 대한민국 정부 수립, 6.25 전쟁까지 겪으며 파란만장한 정치 생활을 보냈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
표면적으로는 자유 민주를 표방했지만 사사오입 개헌, 3.15 부정 선거 등 장기 집권을 시도한 정황이 존재했고 현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야당 탄압, 언론 통제, 반대파 숙청, 국가보안법 남용 등이 있었기 때문에 정치면에서는 부정적인 비판을 많이 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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